한국과 해외 예능 포맷 비교 분석:한국 ‘국경없는 포차’ vs 미국 ‘Taste the Nation’
글로벌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민’은 전 세계 사회의 주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한 나라 안에서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공존하는 현실은 더 이상 예외적이지 않다. 동시에 이민자들은 정체성, 차별, 소속감, 문화 충돌 등 수많은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들의 삶과 감정을 어떻게 공론화하느냐는 사회 전체의 포용력과 직결된 문제로 여겨진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민자’를 중심 인물로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단순 오락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대중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의 JTBC ‘국경없는 포차’와 미국 훌루(Hulu)의 ‘Taste the Nation with Padma Lakshmi’다. ‘국경없는 포차’는 한국 셀럽들이 해외에서 야시장 포차를 열고,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과 음식을 나누며 소통하는 버라이어티형 힐링 예능이고, ‘Taste the Nation’은 인도계 미국인 방송인 파드마 락슈미가 미국 내 이민자 커뮤니티를 직접 방문하여, 음식과 함께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형 프로그램이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음식과 소통을 통해 이문화를 다룬다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문화 해석의 깊이, 연출 전략, 메시지 설계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 글에서는 이 두 포맷을 비교 분석하여, 현대 예능이 어떻게 이민자와 이문화를 콘텐츠화하고, 시청자와 감정적 접속을 시도하는지를 살펴본다.
한국 ‘국경없는 포차’: 음식과 웃음을 통해 관계를 풀어내는 감성 교류형 포맷
JTBC의 ‘국경없는 포차’는 2019년 방영된 예능으로, 연예인들이 해외의 야시장 또는 거리에서 즉석 포장마차를 열고 다양한 국적의 손님에게 한식을 제공하며 소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출연진은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다국어를 사용하며 적극적인 언어 교류와 문화적 접촉을 시도한다. 손님은 대부분 현지인, 여행자, 이민자, 유학생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일반인이며, 제작진은 이들과 출연진이 나누는 가벼운 농담, 따뜻한 대화, 감동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감정선을 그려낸다.
‘국경없는 포차’는 문화 교류와 이해보다는 감정 공감과 힐링에 초점을 맞춘 포맷이다. 프로그램의 중심은 '음식'이지만, 그것은 단지 소통의 도구로 사용된다. 출연진은 음식을 매개로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 “문화를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직접 조리하고 서빙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적인 관계를 구축한다. 특히 언어 장벽이 존재할 때조차도, 몸짓과 표정, 웃음 등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교류의 순간을 연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연출 방식은 한국 예능 특유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감성을 기반으로 한다. 자막은 손님의 출신 국가, 사연, 반응 등을 친절하게 정리해주며, 음악은 분위기에 맞게 잔잔하거나 유쾌하게 삽입된다. 카메라 구도도 인물 중심의 근접 촬영을 활용해,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이로 인해 시청자는 출연진과 함께 외국인 손님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음식이라는 공통 경험을 통해 “우리는 결국 다르지 않다”는 감성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이문화 자체를 깊이 있게 해석하거나, 이민자 문제에 대한 구조적 접근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이는 프로그램의 성격이 예능-버라이어티 중심이기 때문이며, 대신 ‘다름’보다는 ‘같음’을 부각시키는 연출을 택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위로를 전달한다. ‘국경없는 포차’는 결국 낯선 세계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정서를 기반으로, 이문화 예능을 감성적으로 풀어낸 콘텐츠라 할 수 있다.
미국 ‘Taste the Nation’: 정체성과 정치성을 결합한 이문화 다큐예능
‘Taste the Nation with Padma Lakshmi’는 2020년부터 Hulu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형 음식 예능이다. 이 프로그램은 인도계 미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닌 방송인 파드마 락슈미가 미국 전역의 이민자 커뮤니티를 직접 찾아가 그 지역의 전통 음식, 문화, 역사, 공동체를 조명하며, 동시에 ‘미국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출연자는 그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이민자, 현지 셰프, 활동가, 역사학자 등으로 구성되며, 한 회차마다 하나의 문화권(예: 멕시코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등)을 집중 탐구한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음식을 통해 정체성과 이민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조명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타코를 중심으로 한 멕시코 커뮤니티 편에서는 미국 내 반이민 정책과 국경 문제를 함께 다루며, 음식을 통해 차별, 경계, 역사 왜곡의 문제를 풀어낸다. 또한 이민자가 단순히 '이국적 음식의 제공자’가 아니라,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구성한 핵심 주체임을 강조한다. ‘Taste the Nation’은 명백히 다문화 사회의 정체성과 그 안에서의 정치적 목소리를 중심에 둔 콘텐츠다.
연출은 다큐멘터리 형식에 충실하다. 인터뷰 중심의 구성, 역사적 영상 자료 삽입, 파드마의 내레이션, 현장감 있는 촬영은 이 프로그램을 예능이라기보다는 문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만든다. 다만, 진행자의 친근한 태도, 유머, 개인적 감정 고백이 포함되어 있어 시청자는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 편집은 사건의 맥락과 정보 전달에 집중하며, 시청자에게 이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과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Taste the Nation’은 미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 중 하나인 이민, 정체성, 인종, 문화 융합 문제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성공적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음식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도구를 사용해, ‘국적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라는 포용의 서사를 전달하며, 동시대 미국의 복합적 민족 정체성을 조명한다. 이는 이문화 콘텐츠가 단순 ‘다름의 소개’를 넘어서, ‘다름의 권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문화 콘텐츠의 방향성: 힐링 중심 예능 vs 정치적 정체성 다큐
‘국경없는 포차’와 ‘Taste the Nation’은 모두 음식과 소통을 통해 이문화를 다루는 콘텐츠지만, 포맷, 연출 전략, 핵심 메시지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국경없는 포차’는 감정 교류와 문화적 따뜻함을 중심으로 구성된 힐링 예능형 콘텐츠이며, ‘Taste the Nation’은 정체성과 문화 충돌을 직시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사회 다큐형 콘텐츠다. 전자는 즐거움과 따뜻함을 통해 공감을 유도하고, 후자는 정보와 성찰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 차이는 각각의 문화적 맥락과 사회 환경에서 기인한다. 한국은 아직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며, 이민자에 대한 제도적 수용이나 사회적 논의가 미국보다 적다. 따라서 ‘국경없는 포차’는 가볍고 따뜻한 접근을 통해 이문화를 소개하고, 감정적 거리 좁히기를 우선시한다. 반면 미국은 이민자 사회 자체로 구성된 국가이며, 이민 문제는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정치적 이슈다. 이에 따라 ‘Taste the Nation’은 음식을 통해 정체성 담론을 확대하고, 이민자의 존재 의미와 사회적 권리에 대한 화두를 시청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연출의 톤도 각기 다르다. ‘국경없는 포차’는 예능적 대화, 리액션 중심의 감성 설계를 활용하며, ‘Taste the Nation’은 인터뷰 중심의 서사 구조와 사실 기반 서술을 중심으로 삼는다. 두 프로그램 모두 시청자에게 이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감정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문화 콘텐츠의 공통 전략을 보여준다.
결국 이민자 소재 예능은 단순히 음식이나 문화 소개를 넘어서, 사회적 인식 전환을 위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국경없는 포차’는 감성적으로 접근하여 정서적 유대감을 만들고, ‘Taste the Nation’은 지적으로 접근하여 인식의 확장을 유도한다. 이 두 프로그램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청자에게 ‘다름’에 대한 이해, ‘공존’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콘텐츠가 사회를 바꾸는 힘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