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해외 예능 포맷 비교 분석:한국 ‘방과후 설렘’ vs 미국 ‘The Office’
현대 예능은 단순히 웃음을 주는 기능에서 벗어나, 스토리와 캐릭터, 상황 설정을 통해 드라마처럼 즐기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시트콤형 리얼리티 예능’이다. 이 장르는 리얼리티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철저하게 구성된 캐릭터와 연출된 상황을 통해 극적인 재미를 만들어낸다. 예능의 가벼움과 시트콤의 서사를 결합한 이 포맷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시청자에게 보다 높은 몰입도와 감정 이입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한국의 MBC ‘방과후 설렘’과 미국 NBC의 ‘The Office’를 들 수 있다. ‘방과후 설렘’은 오디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참가자들의 개별 캐릭터 서사와 상호작용이 시트콤처럼 연출되어 있으며, 자막·편집·상황극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다. 반면, ‘The Office’는 허구의 직장을 배경으로 실제처럼 촬영된 모큐멘터리 형식의 시트콤으로, 리얼리티의 틀을 활용하여 극적 구조를 만들고, 캐릭터의 일상을 통해 사회를 풍자한다. 이 두 프로그램은 각각 리얼리티에 시트콤을 입힌 것과, 시트콤에 리얼리티를 입힌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된다.
이 글에서는 ‘방과후 설렘’과 ‘The Office’를 중심으로, 시트콤형 리얼리티 예능의 구조와 전략, 캐릭터 활용 방식, 감정 설계 차이를 분석함으로써, 장르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 예능의 진화 양상을 조명해본다.
한국 ‘방과후 설렘’: 캐릭터 중심의 오디션 예능과 시트콤 연출의 결합
‘방과후 설렘’은 2021년 MBC와 네이버 NOW.에서 동시 방영된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오디션 리얼리티 구조를 따르면서도, 참가자 각각을 ‘드라마 속 인물’처럼 묘사하고, 그들의 상호작용과 감정을 마치 시트콤처럼 편집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즉, 실제 경쟁 상황 속에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적극적으로 각색하여 시청자에게 이야기적 몰입감을 제공한다.
가장 큰 특징은 강한 캐릭터 구축과 내러티브 중심 편집이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실력을 겨루는 오디션 참가자가 아니라, ‘리더’, ‘막내’, ‘센 언니’, ‘내성적 소녀’ 등 정형화된 캐릭터 이미지로 설정된다. 제작진은 이러한 캐릭터들이 갈등하거나 성장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상황을 연출하며, 시트콤처럼 반복적이고 익숙한 감정 코드를 배치한다. 예를 들어, 참가자들 간의 티격태격, 눈물, 화해, 협동 등은 모두 ‘리얼’처럼 보이지만, 정서적으로 계산된 서사 구조 안에서 발생한다.
편집은 자막, 효과음, BGM, 리액션 컷 등을 적극 활용하여, 시청자가 등장인물의 감정을 빠르게 파악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히 ‘리얼리티 안에 감정 연출을 심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한국형 시트콤 요소(유머, 감정 과장, 드라마적 대사)가 리얼리티 예능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이는 ‘방과후 설렘’을 단순 오디션 예능이 아니라, 감정과 드라마가 혼합된 리얼 시트콤 오디션 쇼로 만들어주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리얼한 감정은 연출될 수 있다’는 전략이다. 제작진은 인위적 드라마가 아닌 듯 보이게 감정을 배치하고, 시청자는 그 안에서 공감과 몰입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러한 감정 설계 방식은 한국 예능의 정서 중심 미학을 기반으로 하며, 특히 10대~20대 여성 시청자를 중심으로 ‘누구를 응원할지 선택하는 감정 소비’가 이뤄진다.
미국 ‘The Office’: 모큐멘터리로 포장된 시트콤의 리얼리티 전략
‘The Office’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NBC에서 방영된 미국의 대표적인 모큐멘터리 시트콤이다. 이 프로그램은 가상의 종이 회사인 ‘던더 미플린’의 일상적인 사무실 풍경을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여, 시청자가 마치 진짜 회사를 엿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서사, 연출, 대사, 구조는 철저히 각본에 기반한 시트콤이며, 리얼리티 형식을 차용해 극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가장 큰 특징은 ‘허구를 리얼처럼 보이게 만드는 연출’이다. 출연자들은 카메라를 향해 직접 말하는 ‘인터뷰 형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이는 시청자에게 다큐멘터리적 몰입감을 제공한다. 동시에 프로그램은 직장 내 부조리, 성차별, 인종차별, 위선, 무능함 등 현실적인 문제를 풍자하면서도, 유쾌함과 공감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블랙 코미디적 정서를 유지한다.
‘The Office’는 정형화된 캐릭터의 충돌과 일상 속 사건을 통한 감정의 흐름 설계가 탁월하다. 주인공 마이클 스콧은 ‘민망한 상사’의 전형이고, 짐과 팸은 사내 로맨스를 대표하며, 드와이트는 극단적 캐릭터의 클리셰를 충실히 수행한다. 이들은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 리얼하게 연기하면서도 극적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리얼과 허구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독특한 서사를 구축한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시청자에게 “진짜는 아닌데 왠지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감정”을 주는 데 성공했다. 이는 시트콤의 캐릭터 구조와 리얼리티의 형식적 장점을 모두 가져온 전략으로, 이후 수많은 시트콤과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튜브와 스트리밍 시대에 짧은 클립 단위 소비에 최적화된 서사 구조는 콘텐츠 확장성과 재생산성 측면에서도 매우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된다.
감정 설계와 서사 구조: 한국식 공감 시트콤 vs 미국식 풍자 리얼리즘
‘방과후 설렘’과 ‘The Office’는 모두 시트콤적 요소와 리얼리티 형식을 결합한 콘텐츠지만, 어떤 감정을 중심에 놓고, 어떻게 서사를 구축하는가에 있어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방과후 설렘’은 인물 중심의 정서적 성장 서사를 강조하며, 경쟁과 우정, 갈등과 화해의 감정을 시트콤처럼 구성해 시청자가 “이 인물을 응원하고 싶다”는 감정적 충성심을 갖도록 만든다. 반면, 미국의 ‘The Office’는 상황 중심의 블랙 유머와 현실 풍자를 통해 시청자가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왠지 내 얘기 같다”는 거리감 있는 공감을 경험하게 한다.
문화적 차이도 이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예능에서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연출을 선호한다. 이에 따라 ‘방과후 설렘’은 참가자의 서사를 중심으로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며, 시청자의 정서적 반응을 유도한다. 반면, 미국은 시트콤에서도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풍자와 아이러니를 통해 ‘간접 공감’을 이끌어내는 연출을 선호한다. ‘The Office’는 웃음 뒤에 있는 불편함과 현실의 어두움까지 포용하는 감정 설계를 통해, 보다 복합적인 정서를 전달한다.
또한 편집 방식도 크게 다르다. ‘방과후 설렘’은 자막, 리액션, 클로즈업, 음악 등 시청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도구를 적극 활용하며, ‘The Office’는 편집이 최소화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사실적’ 구조로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 차이는 각국의 콘텐츠 소비 트렌드와 시청자 심리에도 영향을 준다.
결국 두 프로그램은 시트콤과 리얼리티를 접목하는 방식은 달라도, 시청자가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고 감정을 공유하도록 돕는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방과후 설렘’은 한국식 감성 서사의 대표적인 리얼 시트콤형 예능이고, ‘The Office’는 리얼리티 포맷을 차용한 미국식 시트콤의 진화형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은 장르 혼합 시대의 콘텐츠가 어떻게 감정을 조율하고, 시청자의 몰입을 설계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