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해외 예능 포맷 비교 분석:한국 ‘런닝맨’ vs 미국 ‘Whose Line Is It Anyway?’
현대 예능에서 웃음을 만드는 방식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예능은 더 이상 단순히 웃긴 사람을 내세워 상황을 만드는 구조가 아니라, 연출, 대본, 즉흥성, 캐릭터, 상황 설정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고도의 스토리텔링 엔터테인먼트로 진화했다. 특히 ‘즉흥성’과 ‘대본’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느냐는 각국 예능의 문법과 시청자 문화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며, 방송의 신뢰성과 웃음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런 비교에 적합한 대표 프로그램이 한국의 SBS ‘런닝맨’과 미국의 ‘Whose Line Is It Anyway?’다. ‘런닝맨’은 대규모 미션과 게임, 게스트 출연 등 예능적 드라마 구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즉석 리액션을 중요시하는 대본+즉흥 혼합형 포맷이고, ‘Whose Line Is It Anyway?’는 즉흥극(Improvisation Theatre)을 기반으로 모든 상황이 무대 위에서 즉석으로 구성되는 대사 중심의 실시간 개그쇼다.
두 프로그램 모두 웃음을 창출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연출 방식, 대본 개입 정도, 출연자의 캐릭터 활용, 시청자 몰입 구조는 매우 다르다. 이 글에서는 ‘런닝맨’과 ‘Whose Line’을 비교 분석하여, 예능이 웃음을 설계하는 방식과 즉흥성을 수용하는 문화적 감각의 차이를 깊이 있게 다뤄본다.
한국 ‘런닝맨’: 대본을 덧입힌 리얼 버라이어티의 연출된 리얼
SBS의 대표 예능 ‘런닝맨’은 2010년 첫 방송 이후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은 글로벌 포맷이다.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출연진이 팀을 이뤄 각종 게임과 미션을 수행하는 버라이어티 리얼리티이며, 각 회차마다 스토리가 설정되어 있고 그 위에 출연자의 즉흥적 행동이 더해지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지닌다. 이로 인해 시청자는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속에서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런닝맨’의 강점은 캐릭터 기반의 구조다. 유재석, 김종국, 하하, 송지효 등 고정 멤버는 각각 ‘국민 MC’, ‘능력자’, ‘배신의 아이콘’, ‘멍지효’ 같은 캐릭터를 부여받고, 그 캐릭터에 따라 행동하고 리액션한다. 이는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캐릭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황이 흘러가는 방향이 예측 가능하면서도 유쾌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이 즉흥성은 완전한 즉석이 아니다. 실제로 프로그램은 각 회차마다 콘셉트를 정해두고, 세부 미션이나 장소, 대략적인 갈등 구조를 미리 설정한다. 출연자들은 대략적인 ‘상황 설정’을 알고 있으며, 대사나 행동은 자율적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이는 ‘짜여진 판 위에서의 즉흥 연기’에 가깝고, 출연자들은 그 틀 안에서 자신만의 리액션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연출 방식도 복합적이다. 자막은 시청자의 시선을 유도하며 리액션을 강조하고, 편집을 통해 웃음 포인트를 배가시키는 후처리 중심의 구조가 강하다. 이는 방송 후반에 웃음을 완성하는 한국식 편집 개그의 전형으로, 현장보다 편집실에서 완성되는 개그 콘텐츠의 특징을 보여준다. 결국 ‘런닝맨’은 즉흥성보다는 설계된 상황 속에서 출연자의 리액션을 유도하는 구조이며, 대본과 리얼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한국형 예능 포맷이다.
미국 ‘Whose Line Is It Anyway?’: 진짜 리얼 즉흥극, 무대 위에 웃음을 던지다
‘Whose Line Is It Anyway?’는 1988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1998년 미국 ABC로 포맷이 넘어간 후, 지금까지도 방영되고 있는 즉흥 코미디 쇼의 전설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쇼는 극장에서 연기하는 즉흥 연극의 포맷을 TV로 옮긴 형태로, 대본 없이 사회자가 제시한 주제에 따라 코미디언들이 즉석에서 상황극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회차마다 진행자는 짧은 게임을 제시하고, 출연자들은 몇 초 안에 아이디어를 내고 연기해야 하는 순수 즉흥 개그를 수행한다.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매력은 순간의 창의력과 순발력이다. 출연자는 ‘낯선 상황에 적응하고 웃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언어적 유희, 신체 개그, 패턴 전환, 언어 전복, 반전 연기 등 고도의 연기력을 활용하여 즉흥성을 무기로 삼는다. 즉, 웃음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만 가능한 독창적인 발상과 실수가 웃음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Whose Line’에는 사실상 대본이 없다. 촬영은 스튜디오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진행되며, 후편집 역시 최소화된다. 자막이나 효과음 없이도 충분히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출연자의 역량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이 점은 미국 예능이 출연자 개인의 퍼포먼스에 집중하고, 그들의 개성과 언어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하는 콘텐츠 문법을 반영한다.
또한 관객의 존재는 중요하다. 실시간 반응을 통해 출연자는 자신의 개그가 ‘먹혔는지’를 즉각 확인하고, 관객과의 인터랙션을 통해 리듬을 조절한다. 이는 ‘관객과 함께 만드는 코미디’라는 미국식 즉흥 예능의 미덕이며, ‘Whose Line’은 이 방식을 통해 진짜 무대형 리얼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비교 분석:설계된 리액션 vs 순수 즉흥성, 웃음을 대하는 문화적 감각
‘런닝맨’과 ‘Whose Line Is It Anyway?’는 모두 예능에서 즉흥성과 대본의 경계를 넘나들며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즉흥성의 ‘밀도’와 활용 방식, 연출 철학, 시청자 감정 소비 방식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런닝맨’은 대본 기반의 연출 속에 캐릭터의 반응을 즉흥적으로 삽입하는 구조이고, 미국의 ‘Whose Line’은 즉흥성을 전제로 모든 것을 무대 위에서 즉석으로 만들어가는 퍼포먼스 예능이다.
이 차이는 문화적 코드에서 비롯된다. 한국 시청자는 리얼한 상황 속에서 출연자가 어떻게 리액션하고, 그 과정을 통해 정해진 감정(웃음, 감동, 반전)을 느끼도록 설계된 콘텐츠에 익숙하다. 반면 미국 시청자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출연자의 창의성과 언어적 재치, 즉흥 반응에서 오는 ‘지능적 유머’를 더 선호한다. 즉, 한국은 편집과 구조의 리얼리티, 미국은 순간적 두뇌 게임의 리얼리티를 웃음의 근간으로 삼는다.
또한 시청자와의 관계 설정도 다르다. ‘런닝맨’은 시청자를 ‘제3자 관찰자’로 두고, 게임과 드라마적 설정을 따라가며 웃음을 유도한다. 반면 ‘Whose Line’은 관객과 출연자가 한 무대 위에 있는 듯한 공연형 유대감을 전제로 하며, 즉흥성과 실수조차 ‘공유된 재미’로 끌어안는 구조다.
결론적으로 ‘런닝맨’은 한국 예능이 구축한 상황 기반 리얼+대본 예능의 정수이며, ‘Whose Line Is It Anyway?’는 미국 예능이 추구하는 즉흥 연기의 최고봉이자 창의성 중심 예능의 정점이다. 두 포맷은 웃음을 만드는 구조와 즉흥성을 활용하는 방식이 얼마나 문화적 문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앞으로도 글로벌 예능 기획자들이 참고해야 할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