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해외 예능 포맷 비교 분석

한국과 해외 예능 포맷 비교 분석:한국 ‘알쓸범잡’ vs 영국 ‘Who Do You Think You Are?’

manualnews 2025. 7. 22. 09:00

기억을 중심으로 한 예능 콘텐츠는 과거의 사실이나 개인의 경험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이라는 소재는 현재를 해석하고, 정체성을 탐색하며, 감정의 흐름을 연결하는 복합적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최근 들어 방송 콘텐츠가 점점 더 내면의 이야기, 역사적 연결, 숨겨진 맥락에 주목하면서, 기억을 중심에 둔 프로그램들이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과 영국의 ‘Who Do You Think You Are?’는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알쓸범잡’은 사건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 기억의 해석이라면, ‘Who Do You Think You Are?’는 개인의 과거를 추적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다큐멘터리적 구성이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회상형 구조를 기반으로 하지만, 기억의 출발점, 목적, 감정 설계에서 전혀 다른 연출 전략을 택한다.

이 글에서는 이 두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기억’이라는 추상적 소재가 어떻게 예능 콘텐츠로 구조화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시청자에게 어떤 감정적 또는 인지적 작용을 유도하는지를 문화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영국 방송이 ‘기억’을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를 통해 집단 지식 vs 개인 정체성, 사건 중심 vs 혈통 중심, 탐구형 포맷 vs 감정 서사형 포맷이라는 구조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과 해외 예능 포맷 비교 분석:한국 ‘알쓸범잡’ vs 영국 ‘Who Do You Think You Are?’

한국 ‘알쓸범잡’:범죄라는 공통 기억을 지식으로 확장하는 탐구형 예능

‘알쓸범잡’은 tvN이 제작한 지식 교양 예능 시리즈로, 전직 검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범죄와 사회적 사건을 다각도에서 분석하는 토크쇼 형식의 예능이다. 이 프로그램은 기억이라는 소재를 ‘개인의 회상’이 아닌 ‘사회의 기억’, 즉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잘 이해하지 못했던 사건들의 복원으로 접근한다.

가령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조두순 사건, 살인의 추억 실화 등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들은 시청자의 집단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그 이면의 구조나 수사 과정, 심리 분석은 종종 빠져 있다. ‘알쓸범잡’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든다. 출연진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지 않고, 사건을 둘러싼 법적 쟁점, 범죄심리, 사회적 배경, 수사 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해석하며, ‘기억을 지식으로 확장하는 구조’를 취한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범죄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다시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지닌다. 패널들은 각자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토론을 이어가며, 범죄라는 사건을 단순히 sensational하게 소비하지 않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조명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기억’이라는 추상적 요소를 논리와 정보로 정리하면서 스스로 인식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연출 방식도 특징적이다. 사건 관련 영상, 뉴스 자료, 수사 기록 등이 적절히 삽입되며, 토크 중심의 스튜디오 구성 속에서도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교차 편집함으로써 현실감을 더한다. 프로그램은 웃음보다는 진중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범죄를 통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는 ‘알쓸범잡’이 회상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지식화된 서사 전략으로 활용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영국 ‘Who Do You Think You Are?’ :개인의 뿌리를 추적하는 정체성 다큐

영국 BBC의 ‘Who Do You Think You Are?’는 2004년부터 방송된 장수 프로그램으로, 유명인이 자신의 가계와 가족사를 추적하며 조상들의 삶을 알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이 프로그램은 회상을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하며, 기억을 감정적으로 설계한 리얼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출연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후 프로그램 제작진과 함께 교회 문서, 출생 신고서, 이민 기록, 전쟁 기록 등 수많은 자료를 통해 조상들의 삶을 추적해 나간다. 과거 조상의 직업, 출신 지역, 생전의 고난, 그리고 그들이 겪은 사회적 맥락이 자세히 설명되며, 출연자는 점점 자신과 연결되는 역사적 맥락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된다.

이 과정은 지식 탐구라기보다는 감정적 회복의 여정으로 구성된다. 가령 출연자의 조상이 전쟁 포로였거나, 극심한 가난 속에서 자녀들을 키웠거나, 때로는 전혀 다른 인종이나 문화권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이러한 충격과 발견은 출연자에게 자신의 현재 정체성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감정적 경험으로 작용한다.

연출 방식 또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설계한다. 카메라는 출연자의 표정을 클로즈업하고, 다큐멘터리적 내레이션과 배경 음악을 통해 감정선에 맞춘 리듬을 조절한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개인의 시선으로 풀어내며, 기억을 단순한 정보가 아닌 감정적으로 체험되는 이야기로 전환한다. 이는 ‘기억 예능’이 단지 정보를 다루는 포맷이 아니라, 존재의 뿌리를 설명하는 정체성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비교 분석 :사회적 사건의 재구성 vs 개인 정체성의 감정화

‘알쓸범잡’과 ‘Who Do You Think You Are?’는 모두 회상형 구조를 기반으로 하지만, 기억의 성격과 목표, 구성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공통된 사건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해석해 사회적 지식으로 확장하는 포맷이고, 영국은 개인의 가계사를 통해 감정적으로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서사형 콘텐츠다.

‘알쓸범잡’은 범죄라는 소재를 통해 기억의 대상이 되는 사건들을 구조화하고, 이를 통해 시청자의 인지적 흥미를 자극한다. 출연자는 사회적 전문가들이며, 기억은 객관적 분석의 대상이다. 시청자는 정보를 습득하며 사건에 대한 해석 능력을 키우게 된다. 기억은 ‘과거를 복원하고 오늘의 지식으로 환원하는 과정’이며, 감정보다는 논리에 기반한 회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Who Do You Think You Are?’는 기억을 통해 현재의 나를 해석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출연자는 감정의 주체이며, 기억은 자신 안에 내재된 과거와의 연결 고리로 작동한다.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공감과 몰입을 유도하는 감정적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결국 시청자는 출연자와 함께 정체성을 탐색하며 “우리도 누구의 후손일 수 있다”는 보편적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이 두 콘텐츠는 각각 사건 중심 서사 vs 인물 중심 서사, 전문가 지식 중심 vs 참여자 감정 중심, 사회 구조 분석 vs 개인 내러티브 구성이라는 구조적 차이를 보이며, ‘기억’을 대하는 방송 포맷의 다층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기억 예능은 과거를 재구성하는 동시에, 현재의 위치를 설명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안하는 거울이며, 그 거울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콘텐츠의 결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