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을 느낄 때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몸짓과 행동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단순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감정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어떤 방식으로 허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연애 예능 프로그램은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최적의 장르다.
한국의 <썸바디>와 미국의 <Dating Around>는 모두 낯선 사람들 사이의 감정 교류와 호감 형성을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썸바디’는 댄서를 중심으로 한 직업 기반의 감정 흐름과 무언의 표현을 강조하며,‘Dating Around’는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일반인이 데이트를 통해 자기 감정을 말로 직접 전달하고,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 두 프로그램은 연출 방식이나 참가자 구성도 다르지만,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을 어떻게 말하는가’에 대한 태도 차이다.
본 글에서는 감정의 시작, 진행, 표현, 선택에 이르기까지한국과 미국이 연애를 어떻게 다르게 언어화하고,그 안에서 어떤 문화를 반영하는지를 비교해 본다.
썸바디: 감정은 춤을 타고 흐른다, 말은 느리고 행동은 깊다
<썸바디>는 단순한 연애 리얼리티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댄서들의 감정 표현 방식을 춤이라는 비언어적 예술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전 세계 유일무이한 독특한 포맷을 가진다. 참가자들은 무용가, 댄서, 퍼포머 등 신체 언어에 익숙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무대 위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감정을 매우 섬세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감정은 ‘좋아한다’는 말보다 누구와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는지, 리허설 중 누구를 자주 바라보는지, 춤을 출 때 어떤 감정선을 드러내는지로 나타난다. 특히 합동 안무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밀착되고, 동작 하나하나에 미묘한 감정이 깃들며, 시청자는 이러한 ‘행동 기반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썸바디>의 제작진 역시 이러한 흐름을 존중한다.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려 하지 않고, 출연자의 선택과 호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편집한다.제작진은 특정 장면에 자막을 넣거나 자극적인 인터뷰를 강요하기보다, 침묵 속의 감정이나 슬쩍 스치는 눈빛에 의미를 담는 편집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감정 표현 방식은 한국 사회의 정서적 커뮤니케이션 특성과 매우 닮아 있다.한국인은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상황과 분위기, 눈치와 맥락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려 한다.
따라서 <썸바디>는 춤이라는 도구를 통해,한국식 감정 표현의 정교함과 복합성을 아름답게 구현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Dating Around: 감정은 말로 정의된다, 관계는 질문과 답변의 연속이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미국의 <Dating Around>는 감정을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이 프로그램은 한 명의 주인공이 5명의 이성과 각각 1:1 데이트를 하고,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마지막에 선택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감정이 대화와 언어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데이트는 대체로 식사와 술자리에서 이루어지며, 참가자들은 처음부터 솔직한 질문을 던진다.“너는 과거 연애에서 어떤 점이 힘들었어?”, “아이를 원해?”, “신앙은 중요하게 생각해?” 등
한국식 예능에서는 쉽게 등장하지 않는 주제조차도 거리낌 없이 말로 주고받는다.
감정이 생겼을 때는 “너 정말 매력적이야”, “지금 너와 키스하고 싶어”라고 말하며감정 표현을 직접적으로 선언한다.
이러한 대화 구조는 미국 사회의 기본적인 감정 표현 문화와 맞닿아 있다.
미국은 개인의 감정을 숨기기보다 정확하게 말로 표현하고, 그 감정을 근거로 다음 행동을 선택하는 문화다.또한 ‘선택을 미루는 것’은 비효율로 여겨지고, 연애에서도 감정의 즉시성과 확신을 중요하게 본다.
<썸바디>에서는 한참 고민해야 할 감정이, <Dating Around>에서는 20분 만에 정리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결코 경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감정도 행동처럼 신속하게 정의하고 반응해야 한다는 문화적 판단 기준이 작동하는 것이다.프로그램의 편집 역시 빠르고 직선적이다. 불필요한 장면을 과감히 생략하고,
대화와 선택에 집중하며, 감정의 전개보다 결론과 선택 자체를 중심에 둔다.
감정은 흐르는가, 정의되는가: 표현 방식에 담긴 문화의 핵심
<썸바디>와 <Dating Around>는 둘 다 ‘낯선 사람 사이의 감정’을 탐구하지만,그 감정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전달하고, 언제 드러내는가에 대한 철학은 정반대다.한국의 <썸바디>는 감정을 천천히 조율하고, 시간을 들여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관계의 완성보다, 그 과정 속의 변화와 떨림에 가치를 둔다.
특히 춤이라는 도구는 감정을 말로 하지 않아도 전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한국인의 정서적 감수성과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반면 미국의 <Dating Around>는 감정을 말로 정의하고, 그에 따른 선택을 빠르게 실행하는 것을 긍정한다.데이트 중 느끼는 호감, 불편함, 기대감 등은 모두 대화 속에서 실시간으로 교환되며,관계는 감정의 ‘표현’보다 감정의 ‘확인’을 통해 발전한다.결국 두 프로그램은 연애 리얼리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안에는 국가별 감정 문화, 관계 유지 방식, 개인과 타인 간 경계에 대한근본적인 가치관이 녹아 있다.사랑은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방식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그리고 그 차이가, <썸바디>와 <Dating Around>라는 두 개의 리얼리티를 완전히 다른 감정의 풍경으로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