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력을 중심으로 한 음악 오디션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어왔다.하지만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을 넘어서,
'가창력'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다루고 구성하는가는 그 나라의 음악 철학, 시청자 정서, 방송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의 <팬텀싱어>와 독일의 <The Voice>는 모두 ‘목소리’에 주목한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그 공통점은 시작일 뿐,결과적으로 두 프로그램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가창력 중심 오디션 포맷을 진화시켰다.
‘팬텀싱어’는 클래식, 뮤지컬, 크로스오버 장르를 중심으로 4중창 팀을 완성하는 실험적인 구조를 갖고 있고,‘The Voice’는 개인의 목소리를 무대의 중심에 놓고 스타성을 평가하는 서구식 음악 쇼다.
본 글에서는 이 두 프로그램이 어떤 방식으로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어떻게 다른 문화적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를 분석해본다.
팬텀싱어: 완벽한 하모니를 위한 목소리의 조합 실험
<팬텀싱어>는 2016년 JTBC에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기존의 개인 경쟁 중심 포맷에서 벗어나 ‘4인 조합’이라는 팀 중심 구조를 도입했다.출연자는 대부분 성악 전공자, 뮤지컬 배우, 크로스오버 가수 등으로기술적 완성도와 클래식 발성에 강점을 가진 이들이 중심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서로 다른 목소리를 조화롭게 결합하여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는 것이다.
성악적인 고음, 팝적인 감성, 뮤지컬의 드라마틱한 톤 등다양한 보컬 색깔을 가진 참가자들이서로에게 어울리는 파트를 찾아내고,
함께 호흡하고 균형을 맞추며 ‘하모니’를 완성해 나간다.<팬텀싱어>는 매 라운드마다 팀 구성이 바뀌고,참가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조합을 시험하며서로의 목소리를 악기로 보듯 분석하고 조율한다.
심사위원 역시 “이 조합이 얼마나 음악적으로 매력적인가”를 평가 기준으로 삼으며,개인 실력보다는 ‘조화’에 집중하는 독특한 평가 구조를 가진다.이런 구조는 한국 사회의 집단 협력 문화,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하는 정서와 맞닿아 있다.
한국인은 독주보다 합창, 개인보다 팀워크에 더 깊은 감정적 몰입을 느끼며,<팬텀싱어>는 바로 그 집단 내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음악 콘텐츠로 완성된다.
The Voice: 보이지 않는 편견을 넘어, 목소리만으로 시작하는 경쟁
독일에서 제작된 <The Voice>는 2010년대를 대표하는 글로벌 오디션 포맷이다.이 프로그램의 가장 상징적인 구조는 바로 ‘블라인드 오디션’이다.
심사위원은 참가자의 외모, 나이, 스타일을 보지 않고오직 목소리만으로 판단해 의자를 돌리는 구조를 갖는다.
이 포맷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그 이유는 목소리의 순수성에 집중하는 동시에,보이지 않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구조적 장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시청자는 단순히 ‘잘 부른다’가 아니라"이 사람이 이 목소리를 가졌다고?"라는 놀라움과 감탄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The Voice>는 개인의 음색, 감정 표현, 장르 해석 능력 등보컬의 개성과 예술성에 중점을 두며,이후 진행되는 배틀 라운드, 라이브 쇼에서는 참가자의 스타성, 무대 장악력, 대중성과 시장성도 함께 평가된다.이 구조는 개인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 다양성을 존중하는 서구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어떤 팀에 들어가느냐’보다 ‘내 목소리 하나로 무엇을 해낼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심사위원 역시 참가자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코치’의 역할에 집중한다.즉, <The Voice>는 가창력을 통해 개인을 브랜딩하고, 목소리로부터 출발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쇼이며,그 안에서 드러나는 경쟁은 자기 발견과 자기 실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청자 수용 방식의 차이: 몰입의 포인트가 다르다
한국의 시청자는 <팬텀싱어>를 시청할 때, 음악의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감정적 서사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누가 더 고음을 잘 부르느냐보다, 이 팀이 어떤 과정을 통해 목소리를 맞췄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가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특히 가족을 위한 노래, 부모에게 드리는 헌정 무대 등은 정서적 울림을 주며,
시청자는 ‘음악’보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공감한다.
반면 독일을 포함한 유럽권 시청자는 <The Voice>에서 기교, 개성, 무대 존재감에 더 큰 집중을 한다.
'누가 더 창의적인 해석을 했는가', '이 음색은 기존 가수들과 어떻게 차별화되는가' 같은 관점으로
참가자의 가능성과 독립적인 아티스트로서의 미래를 상상한다.
즉, 팬텀싱어는 '하모니에 공감하는 시청자'를, The Voice는 '개성에 끌리는 시청자'를 전제로 설계된 콘텐츠다.
음악 산업에 끼친 영향과 확산
<팬텀싱어>의 가장 인상 깊은 성과 중 하나는‘크로스오버’라는 장르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이전까지 성악이나 뮤지컬 장르는 제한된 팬층 안에서 소비되었지만,팬텀싱어를 통해 클래식 보컬과 대중성이 결합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팬텀싱어 출신 가수들은 이후 단독 콘서트, 뮤지컬 주연, 예술의전당 무대 진출 등 정통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반면 <The Voice>는 전 세계 각국에서 포맷이 확산되어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해냈다.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스타 양성소로서의 기능을 넘어서'평범한 사람이 목소리 하나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글로벌로 전파한 점에서 문화적 확장력이 컸다.
유튜브와 SNS 시대에 적합한 바이럴 중심의 무대 구성도The Voice 특유의 ‘빠른 소비에 적합한 음악 콘텐츠’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교육적·문화적 가치
<팬텀싱어>는 음악 프로그램이면서도 예술 교육 콘텐츠로 기능하기도 한다.일반 대중은 프로그램을 통해 성악의 기본 구조, 고음 배분, 화성의 구성, 파트 분배 원리 등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된다.또한 참가자들이 팀워크 안에서 타인의 음역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시청자에게도 ‘경쟁이 아닌 협력’의 미덕을 전달한다.이는 단순한 음악적 성과를 넘어, 문화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메시지로 작용한다.
<The Voice> 역시 마찬가지로,참가자들이 트레이닝을 거치며 실력을 발전시키고, 코칭을 받으며 변화하는 과정이 음악 교육 콘텐츠로의 가치를 가진다.특히 출연자와 멘토 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은‘어떻게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자기 스타일을 구축하는가’에 대한 성장 서사를 보여준다.이는 단순히 음악뿐 아니라 자기계발 콘텐츠로서의 효과도 갖는다.
팬덤 형성 방식과 콘텐츠 확장성
<팬텀싱어>는 프로그램 내 팀이 결성된 이후에도 해당 팀이 고정 그룹처럼 활동하면서 팬덤을 기반으로 한 장기적인 아티스트 브랜딩이 가능하다.라포엠, 포레스텔라, 루미너스 같은 팀들은 음원 발표뿐 아니라 정기 콘서트, 클래식 협연, 방송 출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가며TV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아티스트의 지속 가능성을 입증했다.
<The Voice>는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바이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무대 영상의 유튜브 클립화, TikTok으로의 리믹스 확산,
그리고 유명 셀럽 멘토와의 케미스트리를 활용한 마케팅 등 쇼가 끝난 이후보다 '쇼를 보는 그 순간'의 임팩트와 콘텐츠 확산성에 집중한다.이 전략은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시대에 더욱 강력하게 작동하며,<The Voice>를 하나의 트렌드 제작기로 만들었다.
같은 목소리, 다른 해석: 조화와 개성의 문화적 경계
<팬텀싱어>와 <The Voice>는 모두 ‘목소리’라는 동일한 출발점을 공유하지만,그 해석 방식과 결과물은 문화적 기반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팬텀싱어>는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공동체적인 음악의 힘, 관계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선을 보여준다.
개인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그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와 조화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판단은한국 사회의 관계 중심적 사고방식과 닮아 있다.
반면 <The Voice>는 목소리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다.사람의 겉모습과 나이, 배경이 어떠하든‘좋은 소리’가 모든 벽을 넘을 수 있다는 철학은개인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서구 문화의 결과물이다.두 프로그램 모두 가창력을 가장 순수한 기준으로 삼지만,<팬텀싱어>는 음악을 통해 관계를 재구성하는 프로그램이고,<The Voice>는 음악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드러내는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가창력이라는 동일한 조건도,그것을 어떤 가치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전혀 다른 문화적 의미를 지닌 콘텐츠로 진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진화는 한 사회가 목소리에 부여하는 의미, 예술을 대하는 태도, 감정을 조율하는 방식을 가장 깊이 있게 보여주는 문화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